무거운 對話(대화)가 進行(진행)되는 동안 빅토리號의 幹部(간부)船員(선원)들은 숨을 죽이고 이들의 對話(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메러디스 빅토리號의 船長(선장) 제러드 라루는 斷乎(단호)하게 말했다.
「저들을 태웁시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태웁시다」
貨物運搬用(화물운반용)으로 建造(건조)된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12人用 船室(선실)밖에 없었고, 船員(선원)들도 48名 뿐이었다. 數千名을 태웠다간 災殃(재앙)을 갖여올 可能性(가능성)이 컸다. 300여통의 航空油(항공유)까지 싣고 있던 터라 불꽃이라도 튀는 날에는 배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危險(위험)까지도 있었다.
1950年12月22日 金曜日 밤 21時30分 메러디스 빅토리號에 避難民(피난민)들의 乘船(승선)이 시작되었다.
船倉(선창)으로 샐 수 없는 北韓(북한)住民(주민)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모든 틈새사이까지도 避難民(피난민)들을 밀어넣었다. 船艙(선창)을 칸막이로 막도 또 때웠다.
숨쉴 듯 空間(공간)조차 모자를 정도로「이제 그만 !」이라는 외침이 들릴 것 같았지만 그 날 밤이 다 가도록 들려오지 않았다.
1950年12月23日 아침 11時10分, 모든 倉庫(창고)는 가득 찼고 甲板(갑판)에는 사람들로 넘쳤났다.
7600톤의 鋼鐵(강철)배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었고 不可能(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乘船(승선)해 있었다.
10時間30分만에 그렇게 14000여명의 無辜(무고)한 生命(생명)들은 救援(구원)을 向(향)해 乘船(승선)하였다.
機雷探知機(기뢰탐지기)도 없기에 機雷(기뢰)에 依(의)해 沈沒(침몰)할 수 도, 러시아 潛水艇(잠수정)에 依(의)해 擊沈(격침)당할 수도 있었고, 단 한번의 輕微(경미)한 事故(사고)로 숨쉴뜸도 없는 空間(공간)에 물이라고 차오른다면 14000名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埠頭(부두)에는 많은 避難民(피난민)들이 있었고 그들을 생각한다면 단 한名이라도 더 태우는 것이 그들로서는 最善(최선)의 選擇(선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歷史上(역사상) 가장 偉大(위대)한 生命救出作戰(생명구출작전)과 歷史上(역사상) 最惡(최악)의 大慘事(대참사) 사이에서 그렇게 航海(항해)는 시작되었다.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甲板(갑판)에 몰려 있던 사람들에게 얼음같이 찬 물보라를 끼얺으며 거친 東海(동해)를 向(향)해 出航(출항)하였다.
神經(신경)이 痲痺(마비)될 정도의 추운 날씨에 눈보라도 치고 있었다.
甲板(갑판)위의 많은 사람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배에는 飮食(음식)도 물도 電氣(전기)도 없었지만 그들이 견디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意志(의지)와 慰安(위안), 自由(자유)에 대한 希望(희망)이었다.
삶과 죽음의 境界線(경계선)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號에 새로운 生命(생명)이 태어났고 避難民(피난민)들 역시 새로운 生命(생명)에 대한 敬畏感(경외감)에 두려움은 사라져갔다.
놀랍게도 航海(항해) 途中(도중) 4名(명)의 아이가 더 태어났다.
어떠한 危機(위기) 狀況(상황)에서도 沈着(침착)했던 避難民(피난민)들과 다섯名의 新生兒(신생아)들을 보라보며 한 乘務員(승무원)은 이렇게 말했다.